읽게 되는 것

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길 - A Simple Path

돌스&규스 2011. 7. 15. 10:16



















마더 데레사가 걸어온 길,
그리고 우리가 걸어갈 길

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길




미리 밝히지만 저는 기독교도 천주교도 아닙니다.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에 몇번..
그리고 성인이 된 뒤에 친한 사람 손에 이끌려 몇번 교회를 다녀본게
전부인 저는..

기독교인도 천주교인도 아닌 셈이죠.

저와 비슷하게
기독교인도 천주교인도 아니시지만,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이름...
"마더 데레사"라는 수녀님의 이름..

오늘은 이 분이 쓰신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 그녀의 단순한 길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살아 계실때
자신의 명함이라며 만나는 사람에게 나눠주던 것이 있는데..

거기에는 그녀의 "단순한 길"의 방향이 적혀 있었습니다.

단순한 길

침묵의 열매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입니다.
봉사의 열매는 평화입니다.

그리고
"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길" 책의 목차 이기도 합니다.



기도



마음속에 침묵의 공간을 만드십시오.
그 곳에서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을 내주십시오.



믿음



믿음은 기도를 통해 성장합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사랑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
그 자체에 있습니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의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



자신의 상처받기 쉬움보다
타인의 상처받기 쉬움에 더 관심을 기울일 때,
그때 나는 덜 상처받게 됩니다.




평화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순간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행복하십시오.

-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길 본문 中 -




연약하고 왜소한 150Cm의 단신의 수녀, 마더 데레사



마더 데레사
1910년 8월 26일 ~ 1997년 9월 5일

1910년 8월 26일 알바니아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마더 데레사는 열여덞 살때 가톨릭 선교 수녀로 최초 부름을 받았다.

1931년 자신의 수도명으로 데레사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
이는 예수님의 작은 꽃으로 알려진 리지외의 성 데레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29년부터 20여 년 동안 인도 콜카타의 성 마리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이때 결핵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대가없이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고
1950년 인도 콜카타에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했다.

이후 임종자를 위한 집, 나환자를 위한 집, 어린이들을 위한 집, 에이즈 환자를 위한 집 등을 마련하여
버림받고 사랑받지 못한 이들에게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베풀었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 9월 5일 심장질환으로 87세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2003년 10월 19일 데레사 수녀에 대한 시복식이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거행됐다.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데레사 수녀는 이로써
사후 불과 6년이라는 최단기간에 복자 반열에 오르게 되는 기록을 낳았다.

카톨릭 품계에서 복자는 성인 다음이다.

- 본문 중 -




자신을 버려야지만 갈 수 있는 길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걸어간 단순한 길은,
자신을 버려야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너무 복잡하고,
사사로운 것 하나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머나먼 길이죠.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도 걸으면 좋을 그런 길이기도 합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일화를 마지막으로
오늘 포스트를 마감하려고 합니다.

"매일 매일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나는 죽음 앞에서도 가난하고 싶습니다."

1996년 11월 23일.
데레사 수녀는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그는 의사들의 치료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 구경도 못하고 죽어가는데,
 왜 나는 이토록 극진한 간호를 받아야 합니까.?"

그녀는 죽음 앞에서 가난하지 못한 자신을 꾸짖고
안락한 병원 침대 위의 자신을 자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