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되는 것

슬프고 아름다운 한 소녀의 이야기 "황금 물고기" - 르 클레지오

돌스&규스 2011. 7. 13. 18:51



















오, 물고기여, 작은 황금 물고기여, 조심하라!
세상에는 너를 노리는 올가미와 그물이 수없이 많으니.

황금 물고기
르 클레지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



이 소설은
"예닐 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로 시작합니다.

유괴를 당한 나는..
힘없는 국가중에 하나인 아프리카 부족의 일원이자
연약한 어린아이에,
소녀입니다.


 
그녀를 노리는 수많은 올가미와 그물들..



그녀는..

그녀를 성적 노리개로 삼으려 하는 수많은 남자들 틈새에서..
그녀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수많은 사람들 틈새에서..
그녀를 자신의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회적 강자 틈 사이를

힘겹게,
그러나 때로는 강인하게..
헤엄치는 한마리의 물고기 입니다.

어렸을때의 기억이라고는
햇살이 내리쪼이는 하얀거리,
비명처럼 고통스럽게 내지르는 까마귀 울음소리와
그녀를 인신매매한 검은 손이 전부인..

그녀가
그토록 힘겹게 헤엄쳐서..

돌아가야하고,
돌아가고자 하는 곳은..

그녀의 시작점.. 그녀의 고향입니다.

더 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 곳이다.

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돌, 까마귀 울음소리, 십오 년 전에, 영겁의 시간 전에
물 때문에 생긴 분쟁, 우물을 놓고 벌인 싸움,

복수를 위하여 힐랄 부족의 적인 크리우리가 부족의 누군가가 나를 유괴해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물살을 거슬러올라가 어느 강의 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 황금 물고기 본문 中 -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



보통 노벨 문학상은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수상작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2008년 르 클레지오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때에는
수상작의 거론이 없었습니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기도 하답니다.

작가의 한 작품보다는
작가가 써 내려간 수많은 작품을 대상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는 것이지요.

르 클레지오는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로 불리우고 있고,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 후에 프랑스에서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네요.




서정적 언어, 섬세한 묘사.. 그러나 주인공 관점에서는 냉혹한..



르 클레지오는 서정적 글쓰기로 매우 유명한 작가입니다.

저는 이런 서정적 글쓰기로 인하여,
이 분의 다른 작품을 읽는 것에는 매우 어려움을 느꼈으나,
황금 물고기는 생각보다는 쉽게 읽었네요..

이 분의 글쓰기의 또다른 특징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만 상황만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묘사할뿐,
"이래이래해서 내 마음이 아프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죠.

이 소설 역시 매우 슬프고, 안타까운 상황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냉혹하리만큼 거리를 유지하고 주인공을 바라봅니다.

독자는 마치 상황에 개입할 수 없는
그녀를 바라보는 하나의 사물이 된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리고,
주인공 소녀를 응원하게 되고,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에 감흥이 큰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수많은 어려움은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과정일뿐..


▲ 파울 클레의 황금 물고기(네이버 미술 참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달리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누구라 하더라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사물들 사이를 누비며 살아가고 싶었다.


- 황금 물고기 본문 中 -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유괴당해
프랑스, 미국을 전전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 다른 사물들 사이를 누비며 살아갈 뿐이죠.

멀고도 먼 곳을 돌아,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그녀가 바로 황금 물고기 입니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지는 순간,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의 수많은 어려움은.. 그 곳에 도착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는..

이 소설 주인공 라일라의 여정..
그리고 우리의 여정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