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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잘라낸 한쪽 귀" 그리고 오브제, 빈센트 반 고흐 - Vincent Van Gogh

돌스&규스 2010. 11. 29. 23:43



















"빈센트 반 고흐"
한번쯤은 누구나 들어봤던 이름, 그리고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이름..
그러나 정작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름


"빈센트 반 고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 자화상(Autoportrait), 오르세 미술관 소장 - 본 포스트의 모든이미지 출처 : 네이버 미술작품정보

"반 고흐"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세요..?

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기 전에, 저는..
인상주의 화가, 성병과 정신질환을 오고가다 37세에 권총자살한 사람..
그리고 지독하게 가난했고, 살아있을때는 무명이었다가 죽고나서 유명해진 화가..
딱 이 정도였습니다.

한 마디로 별 관심이 없었던 거죠..
워낙 예술에 문외한이다보니.. 쩝~

사람들은 말하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야.
램브란트가 그린 자화상들은 그가 자연을 관찰한 풍경화보다 더 많아.

그 자화상들은 일종의 자기고백과 같은 것이야..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中




나름 성공을 거두었던 20대, 그리고 그의 분노


▲ 난로 옆의 농부 (Paysanne près de l'âtre), 오르세 미술관 소장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미술작품정보

제가 알고 있던 바와 달리,
반 고흐는 20세에 나름 금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물론 화가의 삶으로서는 아니지만,
어려서 배운 그림으로, 아트 딜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지요.
그의 나이 20세에 꽤 성공해서 아버지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술 작품이 상품으로 취급될 수 있는 것에 대한 분노"
첫사랑 고백의 실패로, 직장을 그만두고 선교사의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반 고흐에게 종교적인 선택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개척교회 목사였고, 반 고흐 역시 어려서부터 교회안에 위치한 학교를 다녔을 뿐 아니라
신학 공부를 위해 유학까지 다녀왔던 나름 유학파였거든요.

선교활동을 하면서 동생 테오의 후원으로 그는 그림을 공부하게 되었고,
반 고흐는 그림을 통해 하나님에게 봉사하기를 원했고, 하느님에게 인도하는 화가를 꿈꿔왔다고 전해집니다.

나는 아직 한 점의 작품도 네게 보여줄 수 없단다.
하지만 나는 지금 많은 습작을 그리고 있어..
게다가, 언제 습작이 끝날지, 진정한 작품을 언제 그리게 될 지도 말하기 어려워..





그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웠던 사랑


▲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

반 고흐는 나름 성공했던 아트 딜러라는 직업을 포기하면서 부터 금전적인 어려움에 빠져 듭니다.

그러나 그에게 더 힘들었던 것은,
금전적인 어려움보다 사랑이었지도 모를일입니다.

그의 첫사랑이었던 "유지니 로외"는 이미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한 상태여서 거절당했고,
그의 두번째 사랑이었던 과부 "키 보스 스트릭커"는 그의 사촌이었습니다.
반 고흐 어머니의 언니 딸이었던 것이죠.
물론 완벽하게 거절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세번째 사랑은 5살된 딸을 가진 임신한 창녀 "시엔"이었습니다.
그녀와의 사랑도 반 고흐 아버지의 반대와 어려운 생활 형편때문에 헤어지고 말게 됩니다.
그녀는 어려운 형편으로 다시 창녀의 생활로 돌아가야 했거든요.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왜 하늘의 빛나는 점들에는 프랑스 지도의 검은 점처럼 닿을 수 없을까 ?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듯이,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 더욱 강렬해진 작품에 대한 그의 열정


▲ 노란집(The Yellow House), 반 고흐 미술관 소장

반 고흐는 화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작품에 대한 토론과 작품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화가 공동체를 꿈꾸고, 실행하게 됩니다.
그에게는 예술가의 유토피아였던 셈이죠.

이 곳에서 그가 평소 존경했던 고갱을 갖은 노력을 통해 노란집에 초대하게 되고,
서로의 자화상을 그려주며, 약 한달간 같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반 고흐와 고갱의 작품이 확연히 다른 것처럼,
그들의 성격도 확연히 달라, 자주 예술에 대해 논쟁을 벌이게 되고..
반 고흐는 고갱이 자신을 버릴 것만 같은 공포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1888년 12월 23일 반 고흐는 고갱과 심한 말싸움을 한 후,
자신의 귀를 잘라, "레이첼"이라는 창녀에게 건네주면서
"이 오브제를 잘 보관하라"라고 말하고 첫번째 자살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 그림은 유황색 태양 아래 순수한 코발트빛 하늘과 집, 그 주변을 그린 것이야
어려운 모티브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극복하고 싶어.
아무튼 태양 빛 아래의 노란 집들과 청색의 비할 데 없는 산뜻함이란 굉장해. 지면은 완전히 황색이지.

그 후 그는 이웃의 신고로 정신병원에 타의와 자의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되었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림까지 그리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그의 그림과 함께 했던 우을증이 더욱 심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1890년 7월 27일, 37세 나이로 들판으로 걸어가
권총으로 그의 가슴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게 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는 자살을 감행했다기 보다는
자신에게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게하는 충격 요법을 시행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방아쇠를 당긴 후 가슴에 총을 맞은 채로 집으로 되돌아 간 그는
이틀 후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유명한 그의 마지막 유언
"고통은 영원하다."




반 고흐를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 해바라기


▲ 해바라기(Sunflowers), 뮌헨 노이에 피나코텍 소장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그가 그렇게도 함께 하고 싶어했던, 고갱이 쓰려고 예정된 방에 반 고흐가 직접 걸어둔 그림입니다.


해바라기는 빨리 시들어 버리기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황혼이 올 무렵까지 해바라기를 그린다.


20대 후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37세까지 2,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너무 빨리 시들어버리는 해바라기처럼,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모든 감정을 소진하여 그림을 그렸던 그.

"태양을 닮은 해바라기의 노란 빛은
 반 고흐가 회화에서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서 꿈꿔왔던 빛 이다."
 - 베르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