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주 어릴적에 살던 집 안방에는 다락방이 있었어요.
다락방에 올라가면 별별 잡동사니들이 다 있었지만 그중에서 제 흥미를 제일 많이 끌었던건
정말 낡고 낡아 너덜너덜한 책 몇권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읽고 또 읽어서
표지도 너덜너덜 거의 떨어져 읽을때마다 표지를 꼭 붙들고 읽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로 아주 유명한 책인데요.
영화가 1939년에 나왔는데 이 책은 1978년에 발간된 책이더라구요.
완전 작은 활자체에 세로쓰기책이라 읽기도 무지무지하게 힘들어요 ^^;;;
이렇게 읽기도 어려운 책에 빠진 이유는?
"스카알렛" 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생생한 묘사가 너무도 일품이기 때문이죠.
허영끼 넘치고 사랑받는 것과 예쁜 외모를 자랑할줄만 알았던 스카알렛이
남북전쟁에서 살아남고
레트 버틀러의 거친 표현방식의 사랑과
평생의 연적으로 미워하던 멜러니의 변함없는 우정,
영원의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애쉴리와의 관계속에
나이 들어가며 점점 인생과 진정한 사랑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스펙타클하고 세밀해서 중간의 지루할 법한 남북전쟁 묘사마저도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 것 같거든요.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남북전쟁 직후 먹고살기도 힘든데 태라에 매겨진 세금 300달러를 내기 위해
스카알릿은 집에 유일하게 남은 좋은 천인 벨벳 커튼으로 드레스를 만들어입고
레트에게 돈을 빌리러 가는 장면이에요.
전혀 고생을 몰랐던 귀부인처럼 좋은 옷(좋아보이는 옷)을 차려입고 찾아가지만
남북전쟁중에 거친 농사일과 살림으로 상할대로 상한 손을
레트에게 들켜서 결국 돈을 빌리지 못하고
우연히 동생 수엘렌의 약혼자인 프랭크 케네디를 만나 결혼함으로써 세금을 해결했던 그 장면..
남편이 죽으면 평생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죽은 사람처럼 살아야 하던 그 시절에
세금을 갚으려 두번째 결혼을 함으로써 구설수에 오르지만
스카알릿은 남의 시선은 항상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행복에 충실하게 살아갑니다.
저는 세상의 시선과 자신의 욕망 사이의 기로에서 항상 자신의 욕망을 선택하는 스카알렛이
어쩌면 그렇게 멋지게 보이던지요 ㅎㅎㅎ
저는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 케이스인데
사실 영화도 정말 정말 잘 만든 시대의 역작이지만
책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듯 하더라구요.
저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스카알렛은 영화속의 비비안 리 보다 더 용감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며
레트 버틀러는 클라크 케이블보다 더 멋진 "나쁜 남자"였구요.
찌질한 정말 나쁜 남자 말구요. 멋있는 나쁜남자 ㅎㅎㅎ
애쉴리는 영화를 보면서는 제일 실망한 인물인데..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 상상속에서는 스카알렛이 거의 대부분의 인생을 동경하던 인물답게 어느정도는 멋있었다구요.
아마 책이 좋은 이유가 내 상상을 보태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근데 제가 가진 책이 이제 진짜 너무 낡아서 더 망가지기 전에
다른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보려구 해요.
다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사더라도 저 낡은 책은 아마 평생 간직하게 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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